역사2015. 9. 14. 17:27


20세기 현대세계의 전환점이된 2차세계대전은

 

무기, 특히 항공류에있어서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영국산 글라디에이터 비행기]


대전 초기만해도 이런게 주역으로 쓰였었는데 약 10여년 후인 한국전쟁에선


 

 

이런 제트기가 날라다녔으니 엄청난 발전이지.


불과 백여년전에 처음 만들어진 기계가 지금은 레이더에도 안잡히고 연료공급 안받고도 붕붕날라댕긴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기전에 여러가지 시험비행기들이 2차대전중에는 적을 파괴한 비밀병기로서 많이 제작되었어.

 

(대부분은 꼭 제작된건 아니고 그냥 구상되었었어)

 


 

그래서 오늘은 그런 괴랄한 비행기들에 대해서 알아볼까?

 


 

계획으로, 문서상으로 존재했던 지랄맞은 비행기들은 엄청나게 많아.


다 한번씩 보여주고싶은데 사실 그런건 보다보면 이게 저거같기도 할거고

 

최대한 실제로 만들어진적이 있거나, 볼 가치가 있는걸로 엄선해봤어.




 


XF5U 플라잉 팬케이크

 


 

날으는 팬케이크라고 불리는 이 비행기는 주 날개없이 동체로 난다는 컨셉을 가진 비행기로

 

미해군 항공대에서 실제로 단 한대가 제작이 되었어.

 

 


 


우리에게도 오락실 게임 1945에 파란색 도장을 한 기체로 등장해서 사실 친숙한(?) 비행기지.

 

 

 

 

 

 

 

 

 

 



 


BV141


현대 항공기로 치자면 조기경보기같은? 관제기의 역할을 하기위해 생산된 독일공군의 비행기야.


꼭 한쪽엔진이 날아간 쌍발기같지만 사실 동체와 조종석이 분리되있다는 특징을 가지고있지.


 


 


하지만 경쟁사 포케불프의 fW 189기에 성능이 밀려서 대량생산된적은 없었어.



 

 

 

 

 

 

 

 


 

 


XB-42 믹스마스터


십자형 꼬리날개와 후방에박힌 두개의 프로펠러가 인상적인 폭격기야.


1944년에 시험적으로 미항공대에서 제작해본건데, 폭격기가 전투기에게 요격당하지 않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전투기보다 빠른 폭격기를 만들면 될거야! 해서 속도에 올인한 비행기지.



 

 

 

 

 

 

 

 

 

 

리베룰라


영국항공대에서 만든 시험기로 생김새부터가 괴랄한데...

 

이건 조종석에서 보이는 시야에만 올인해서 항공모함에 잘 착륙하는 컨셉이었대.

 

그래봤자 전방만 보이고 후방은 못봄..

 

날개가 사실상 4개가 있었으니 비행안정성도 좋았고,

 

저 앞의 보조날개가 요즘 나오는 전투기들에도 가끔 붙는 카이트 날개의 시초격이야.



 

 

 

 

 

 

 

 

 


트윈무스탕


미항공기술의 꽃으로 불린 P-51 머스탱을 두개 이어붙이면 두배로 쎄질것이기 때문에 두개를 이어붙인 항공기야.


정작 P-51기는 전투기였지만, 두개를 이어붙인 이 버전은 폭격기로,

 

장거리 비행시 한명이 자고 한명은 조종하고 번갈아가면서 할 수 있도록 계획된거래..


 

 

 

 

 

 

 

 

 

 

 

 

HOng uh - 229

 


 

독일에서 시험기로 제작된 동체=날개=꼬리날개 형 전투기. 그것도 제트엔진으로!!


물론 테스트기만 존재했고, 저런 삼각기는 비행이 안정적이기 못했기 때문에 항상시도만 되다가 실패됬었지.



 

 

 

 

 

 

 

 

 



 


XB-35 레드피시

 


독일의 패전후 그 기술은 미국으로 넘어갔고

 

종전이후에 미국에서 시험적으로 제작해본 폭격기가 x-35야.

 

요즘 있는 B-2 폭격기처럼 생겨먹었지.

 

 


깨알같이 누가 안괴팍하달까봐 조종석도 비대칭으로 달아두었어.

 

하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형태의 비행기는 기류를 안정적으로 타지 못한다는걸 알게되지.

 

하지만 생김새에 꽂혔는지 이런 형태의 항공기는 계속해서 연구되었고 결국 뻘짓의 연구성과가 모여

 

152대의 정교한 컴퓨터들이 매순간마다 동체의 모든부분을 조종한다는 B-2의 탄생에....일조했을까?


과연?

 

 

 

 

 

 

 

 

 

 


 


 


XF-85 고블린


일명 달걀 비행기로 종전후 1948년에 제작된 테스트 제트기야.



 


B 36이라는 폭격기에서 나와서 발사되는 비행기였다하네


 

 

 

 

 

 

 

 

 

 

 

 


 

 


록히드 XFV SALMON

 


 

왜 연어라고 붙였는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이 항공기가 생김새 외에도 특이한건...



 


 

수직 이륙기였기 때문이지. 착륙도 수직인거 같지는 않고


수직이착륙기에대한 최초 실험기같은거였어. 물론 이런 수직이륙방식도

 

 


독일에서 계획하다가 종전후 타다만 서류더미에서 찾은 이 TRIEFLUGEL 항공기에서 따온거였어


과연 독일 뭘해도 일단 제트엔진으로 한다.


 

 

 

 

 

 

 

 

 

 

 

 

 

 

하우네부


독일 이야기가 나온김에 독일의 페이퍼 기체들을 한번 보고가보자.

 

흔히들 하우니브라고도 부르는 나치의 비밀병기로 전쟁말기에 연합군 비행사들 사이에서 무수한 루머로 떠돌던 비행기였어.



이딴게 진짜 종이계획으로나 존재했는지는 모르겠고

 

야간비행을 나간 연합군 조종사들이 가끔 이런 접시 형체가 날아다니는걸보고

 

기총을 발사했더니 유유히 도망가더라 라는 보고가 몇번 올라와서


2차대전계의 유령비행기로 통해.

 

 

 

 


VZ-9


근데 미국에서는 진짜로... 만들었다..

 

 

 

 

 

 

 

 

 

 

 


 


 


HS-132


ME 262와 V1로켓등 제트엔진을 성공적으로 도입하자

 

제트엔진의 위력을 남발하던 독일 항공대는 제트엔진으로 이런저런 비행기를 계획하는데


이건 나름 진지하게 연구되던 HS-132라는 제트 급강하 폭격기야.


 


 


급강하폭격기가 뭐냐하면.. 이렇게 목표에 가파르게 내리꽂으며 폭탄을 떨구는 폭격기들이었는데


폭탄이 떨궈지는 고도가 낮아서 폭탄자체의 체공시간이 짧아 공기저항의 영향을 덜받고

 

또 강하 가속도때문에 공기저항이 다시 최소화되는 효과로 화력은 약해도 정확성하나는 죽여주는 폭격형태였지.


그런데 문제는 급강하를 하니까 강하상태에서 원래 각도로 복귀할때 중력이 6G에서 12G까지도 도달하기때문에

 

기체와 파일럿에 엄청난 무리가 갔지.

 

 

안그래도 중력가속도 많이 받는데 그걸 제트기로?..ㄷㄷ

 

 

 

 

 

 

 

 

 

 

 


 


 

 

ME-323 GIGANT



그냥 대빵큰 독일 수송기였어.

 


이렇게 식량을 조달...


 

 

 

 

 

 

 

 

 

 

CALININ-7


역시 크기하면 빠질수 없는 비행기로 소련군의 수송기였어.


진짜로 저렇게 말도안되는 대포가 달려있진 않았고

 

 

 


평번한 수송용이었는데 저 바퀴를 달고 어떻게 난건지..


 

 

 

 

 

 

 

 

 

 


 

 


 


 

 

미스텔


최초의 유도폭탄 비슷한거였어.


독일 항공대에서 필요없어진 구식 폭격기들, 고장난 폭격기등등을 모아서 내부 장비를 모두 제거하고

 

폭탄만 가득 채워 넣은 뒤에 저렇게 위에 전투기를 이어붙힌후,

 

목표지점까지 날다가 폭격기는 떨궈서 일종의 라디오 조종장치로 유도해 자폭시켰지.


 


 

재활용목적으로 여러 기체들이 사용되었는데 문제는 약간의 라디오 전파장애로 무력화 시킬 수 있었던거야.


이것을 개발하고 연합군에서 라디오 전파방해기를 만들어 오기전까지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하는 함정들을 상대로 간간히 사용된바가 있다해.


 


이런 형식의 유도폭탄은 연합군측에서 먼저 사용되었는데



 

 


노르망디 상륙이 있기전 독일은 프랑스 해안에 V-3라는 초강거리 대포를 완성하기 직전이 되었어.

 

유럽 본토에 앉아서 런던에 포탄을 날릴 수 있는 무기였지.


연합군측은 폭격으로 이 시설을 파괴하려고 하였으나

 

워낙에 방어시설이 좋았던탓에 왠만한 폭탄으로는 손상을 입히기 힘들었지.

 


그래서 위에나온 B-24라는 폭격기에 폭탄을 잔뜩 싣고 그 외 조종을 도울 7개의 항공기들과 편대를 꾸려

 

대대적인 비밀임무를 실행했어.

 


 

방식은 미스텔과는 좀 다르게 실제로 폭격기안에 조종사가 타있다가 목표지점 도달전에 조종사가 탈출을 한후


나머지 전투기에서 라디오 통제로 유도를 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어.


 

 



이때 이 폭격기를 몰기로 선발된 조종사가 훗날 미대통령이된 케니디의 형이었어.


하지만 의문의 이유로 작전 수행중 폭탄을 실은 B-24폭격기가 폭발해버렸고 조종사는 그대로 사망, 작전은 취소되었지.


이후 노르망디 상륙이 있고 점령군에 의해 손쉽게 V-3시설이 파괴되었어


결국 연합군 내에서는 굳이 이런 첨단기술을 쓰며 무리한 일을 할 필요가 있었나 회의가 있었지.

 

 

 

 

 

 

 

 

 

 


 

 

데파이언트 전투기


영국에서 실제로 많이 사용한 기체인데 가장큰 특징은 기총이고 폭탄이고 없고


저기 박혀있는 후방기총으로만 싸웠어. 다만 저 후방기총이 전방빼고 180도 회전이 가능했지.


이 전투기의 주 목적은 폭격기를 요격하는것이었는데 폭격기의 하부로 비행하며 위로 기총을 갈겨 아작내는 전술을 구사했어.


프랑스가 점령되기전 프랑스에서 남은 연합군 병사들을 철수시키는 됭케르크 철수전에서 처음 등장한

 

이 비행기를 독일공군은 구분할 수 없었고 여느때처럼 꼬리를 물고 공격을 시도하자 후방기총에 맞고 격추당했지.



하지만 됭케르크에서의 활약때문에 독일공군에서는 이 기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정작 본토항공전에서 데파이언트조종사들이 폭격기를 요격하려오자

 

이번에는 독일공군이 전방에서 접근해 아작내었자고해.


 

 

 

 

 

 

 

 

 

 

 


 

 

 

STIPA-CAPRONI


이탈리아도 뭐 막나가고싶다 이거지..

 

1933년에 개발된 원통형 비행기라고... 왜만든건지..

 

 

 

 

 

 

 

 

 

 


 


 


JU-287


독일의 제트 중폭격기


역시 제트+전투기보다 빠른 폭격기라는 컨셉으로 설계도상으로 존재했던거 같다.

 

 

 

 

 

 

 

 

 


 

 

FA223


헬기 비스무리한 비행기로

독일에서 이착륙기 개념 시험기로 제작했었어.

 

 

 

 

 

 

 

 

 

 

 

 


 

 

BF 109Z

 

이걸 마지막으로 끝낼게


이건 아까본 트윈무스탕처럼 BF 109를 두대 이어붙이면 두배로 쎄다는 개념 탑체한 독일전투기야.


하지만 트윈무스탕과는 달리 이건 그냥 농담삼아 계획된거고


미국에서는 이런 수많은 문서상으로 존재한 독일의 항공기들을 갈고닦아서


이런 저런거 많이 많이 만들었다고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즐거운 하루 되길 바래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5. 9. 11. 15:53

 

영어때문에 골치아픈 사람들이 많을텐데

영어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면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은 희석될까 해서 준비해 봤어

 

가벼운 포스팅이니 그냥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어

 

 

 

 

1.켈트인 & 로마제국의 흔적

 

 

영어의 역사에 대해 알려면 우선 영국의 역사를 가볍게 살펴봐야 돼.

 

최초로 브리튼 섬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켈트인이었고 이들은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약 400여년 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어.

 

 

<켈트족 분포도>

 

 

 

 

<로마제국>

 

근데 중요한 건 켈트인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안에 켈트인과 로마제국의 흔적은 거의 없다는 거지ㅋ

왜냐면 원주민인 켈트인들이 지금 영국인들의 직접적인 조상인 앵글로+색슨+유트 족들에게 싸그리 몰살당하고 구석으로 쫓겨났거든

 

 

 

 

<앵글로 + 색슨 _+ 유트족들의 침략>

 

 

때문에 영국은 아직도 잉글랜드 본토와

도망치는데 성공한 켈트인들이 살던 스코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로 크게 4등분 되어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지.

 

 

 

 

 

 

어쨌든 켈트인들은 영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에 켈트어의 흔적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다만 '지명'은 쉽게 바뀌지 않는 탓에 지명에는 켈트어와 라틴어의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어.

 

 

가장 유명한 게 -chester -cester -caster영국지명 뒤에 ~체스터 가 들어가는 경우인데 맨체스터, 윈체스터 콜체스터 등이 있지.

 

이는 '병영'을 뜻하는 라틴어 castra에서 유래한 말로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이 대부분 군사적 요충지에 세운 로마의 군사주둔지가 마을로 커지고 다시 도시로 확장되는 테크트리를 많이 탔기 때문이야.

 

그나마 남아있는 켈트어의 흔적 중 가장 대표적인 단어는 '슬로건slogan'과 '차car'야. 슬로건은 켈트어의 후손인 스코틀랜드 게일어의 sluagh(군대/무리)와 gairm(울부짖음)의 합성어이고 car는 켈트어 karros(수레)에서 유래했다고 해.

 

이 외에도 런던(켈트어로 론다디움)이나 템스. 에이본 등의 지명도 켈트어의 흔적이라고 해

 

 

 

 

 

 

2. 앵글로 색슨 Anglo-Saxon

 

 

 

 

 

잉글랜드England는 '앵글로인들이 사는 땅' 이란 뜻으로 이 것만 봐도 영국인들의 직계조상이 앵글로인들이라는 걸 알 수 있지. 이 외에도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는 중상류층을 뜻하는 미국영어인 WASP(White-Anglo-Saxon Protestant)에도
앵글로 색슨이 그들의 직계조상이라는 걸 나타내고 있어.

 

로마제국이 브리튼 섬에서 철수하고 약 1세기가 지난 뒤 지금의 네덜란드-덴마크-독일북부지역에 살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족 색슨족 유트족 등이 브리튼 섬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어. (지금도 독일 동부에 있는 작센(Saxony)

에는 색슨족의 이름이 남아있지.) 이들은 원주민인 켈트인들의 문화를 철저히 파괴하고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등 구석으로 내쫓아버린 후 브리튼 섬의 주인이 됐지.

 

영국의 유명한 설화인 [아더왕 이야기]의 배경도 바로 이 시기로 아더왕은 켈트인들을 모아 앵글로 색슨족의 침공에 맞서싸운 영웅이라고 해.

 

 

 

 

 

 

 

 

 

 

현대 영어에 남아있는 앵글로-색슨족의 가장 뚜렷한 흔적은 요일이름인데 Wednesday(수요일)은 Wodnes daeg(보텐신의 날) 목요일인 ThursdayThors daeg(토르신의 날)로 게르만신화 속 신들의 날이란 뜻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거라고 해.
(토르는 어벤져스에 나오는 그 토르가 맞음)


이 외에도 부활절을 뜻하는 Easter도 게르만신화속 여신인 에오스터(Eostre)를 기리는 봄 축제에서 파생된 거야.

 

 

 물론 영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이니 일상에서 쓰는 대부분의어휘들과 I you 같은 인칭대명사, a the 같은 정관사 to have to be 같은 동사형등 영어의 기본 뼈대와 상당수가이 앵글로색슨족이 쓰던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거지.

 

 


3. 바이킹의 영향

 

 

 

 

 

로마제국이 멸망한뒤 한동안 헬이었던 유럽정세에 따라 브리튼 섬은 그 후로도 끊임없는 침략에 시달렸어.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섬에 정착하고 약 3세기가 지난 8세기 후반 이번에는 스칸디나비아에 살던 바이킹들이 브리튼섬을 침공해들어오기 시작했지.

 

 

 

 

 

앵글로색슨인들은 바이킹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고 그 결과 1차침공때 국토의 절반이상이 바이킹의 식민지가 되어버렸어. 2차침공이 끝난 후엔 왕좌도 바이킹족에게 뺏겨버렸지. 이처럼 바이킹족들에게 국토의 절반이상이 식민지화되고

종국에는 왕좌까지 빼앗겼기 때문에 바이킹족들의 언어가 영어에 많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어.

 

 

 

 

 

대표적으로 영어식 성(姓)끝에 -son이 붙는 것들은 바이킹식 이름으로 앵글로색슨식 이름 끝에 바이킹족 이름 접미사인 son을 붙여서 성을 만들어 쓰게 된 케이스라고 해. 그래서 존John이란 이름도 있고 Johnson이란 성도 있는거지.

 

 

바이킹족들도 꽤 많이 이주해들어왔는지 일상용어에도 바이킹어와 앵글로어(고대영어)가 공존해서 쓰이게 되었어. 영어의 특징 중 하나인 다양한 유사어는 이런 역사적 이유가 있는 거지. 예를 들어 law(법률)은 바이킹어인 lagu에서 비롯됐고 skin skull skill skirt egg husband sister 등도 바이킹어에서 들어온 거래.

 

이렇게 바이킹족들의 어휘가 스며들어오면서 같은 뜻을 지닌 기존의 앵글로어휘들은 소멸된 것들도 있지만 조금씩 의미를 다르게 해서 쓰이게 되었어.예를 들어 hide는 원래 피부/가죽을 의미했지만 skin에 밀려 동물가죽만 뜻하게 됐고 craft도 바이킹 어인 skill에 밀려 공예를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조금 바뀌었지.

 

죽음을 뜻하는 die도 바이킹어인 deya에서 비롯된 거고 원래 앵글로인이 쓰던 steorfan은 starve로 바뀌어 굶어죽는 경우만을 뜻하게 된 거야.

 

 

 

 

 

 

<바이킹들 중 하나인 '덴마크인들의 지배를 받는 곳' 이라는 뜻의

Danelaw지역이 당시 바이킹족들에게 식민지배 받던 곳임>

 

 

이 외에도 wish는 앵글로어 want는 바이킹어 sick은 앵글로어 ill은 바이킹어  rear는 앵글로어 raise는 바이킹어로 지금도 둘은 조금씩 다른의미를 뜻하며 함께 쓰이고 있지.

 

바이킹어가 남긴 흔적 중 가장 주목할만한 건  바로 theytheir them이야. 원래 앵글로어(고대영어)에서는 hie hiera hem 으로 이는 he에서 살짝만 바꾼거였지. 또 3인칭단수 뒤에 -s를 붙이는 것도 바이킹족들의 용법인데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고 앵글로어에서는 -eth를 붙였는데 이게 -s로 바뀐 거라고 해.


세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일부러 그랬는지 sings 대신 singeth를 쓰기도 했는데 세익스피어도 보통때는 sings라고 주로 썼다고 해.

 

 

 

 

 

 

 

 

 


4. 노르만족의 영향

 

2차대전의 판세를 바꾼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유명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는 '노르만인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야.

 


 

 

 

 

 

11세기 무렵 노르망디에 살던 노르만인들의 왕인 윌리엄이 브리튼섬을 처들어왔고 삽시간에 브리튼섬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지.

 

 

 

<정복왕 윌리엄>

 

 

프랑스어를 쓰던 노르만인들은 그 후 200여년간 영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영어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게 됐는데지배계급이 쓰던 언어인 만큼 특히 정치 경제 법률등 전문분야 & 고급문화범주 속의 어휘들에 많은 흔적을 남겼고

이외에도 노르만프랑스어에서 들어온 동사의 숫자만 무려1만여개에 이른다고 해.

 


 

 

 

 

 

 

chic(세련된) sangfroid(침착함) savoir-faire(사교술)등이 프랑스어에서 나온 단어들로 이런 어휘들은 여전히 매우 교양있고 우아한 표현들로 인식되고 있다네.

 

 

재미있는 건 지배-피지배 관계였던 두 민족의 계급차이가 언어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는 건데 예를들어 들판에 있는 양sheep 암소cow 돼지swine는 앵글로어이지만 이걸 잡아서 요리한 양고기mutton 소고기beef 돼지고기pork는 프랑스어로 이는 가난한 앵글로인들은 들판에서 일만 했고 노르만인들은 그들이 바친 요리만 먹었기 때문이라고 해.(지나친 과장이라는 비판도 있음)

 

 

이 외에도 지배계급이 노르만인이었던만큼 재판justice 위증perjury 변호인attorney 교도소prison 의회parliament 궁정court 왕자prince 남작baron 공작부인duchess 등 전문분야나 상류계층의 어휘들은

대부분 프랑스어에서 나온 것들이야.


두 언어가 합쳐져서 나온 표현들도 있는데 프랑스어 gentil(고귀한)에 앵글로식어근이 붙어서 gentleman gentle-women 등의 표현이 나왔고 'law(고대영어) and order(프랑스어)' 'ways(고대영어) and means(프랑스어)'
처럼 비슷한 단어가 반복되는 구도 나오게 됐지. law and order는 법질서, ways and means는 수단방법이라는 표현이야.

 

 

 

 

 

 

 

 

 

바이킹어와 앵글로어가 그랬듯 프랑스어 역시 영어어휘가 풍부해지는데 많은 도움을 줬어.

 

예를 들어 앵글로어 ask와 프랑스어 demand 앵글로어 seek와 프랑스어 search가 있는데 demand는 프랑스에서는 그냥 '묻다'이지만 영어에선 ask가 이미 있기 때문에 demand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느낌이 강한 표현으로 변했고 search가 들어오면서 앵글로어 seek는 뭔가 눈에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걸 찾는 느낌의 표현으로 바뀌었지.

 

 

프랑스어가 영어와 만나면서 남긴 가장 큰 변화는 복잡한 '성性'이 사라졌다는 거야. 원래 프랑스어나 독일어등의 명사에는 남성형과 여성형이 나뉘어져 있거든 앵글로인들 역시 게르만족의 일부였기 때문에고대영어도 남성형과 여성형, 심지어 중성형까지 있었는데 이게 단순히 명사만 다른 게 아니라 남성형 명사를 쓸때와 여성형명사를 쓸 때는 형용사의 끝부분도 다르게 써야 하는 등 애미리스하게 복잡했다고 해.

 

때문에 가뜩이나 프랑스어와 앵글로어로 나뉘어져서 의사소통을 하기 곤란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복잡한 성체계를

간소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14세기정도되면 영어에서 성은 완전히 사라지게 된 거지.

 

 

두 번째는 바로 동사 규칙 변형 현상이야.

영어를 공부하다보면 동사의 규칙변화와 불규칙변화 때문에 짜증이 많이들 났을 거야.

사실 고대 앵글로인들은 대부분 불규칙변화를 썼는데 그나마 프랑스인들이 들어오면서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위해

웬만하면 그냥 끝에 -ed를 붙이는 걸로 변화한 거지.


때문에 영어동사 중 이게 고대 앵글로인들때부터 쓰던 건지 프랑스인들이 들어오고부터 쓴 건지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동사가 규칙변화하느냐 불규칙변화하느냐의 여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do->did run ->ran sew->saw sell->sold 등의 단어는 앵글로시대부터 쓰던 동사인 거지.

 

 

 

 

 

 

 

 

 

 

이처럼 영어는 고대 앵글로어뿐만아니라 프랑스어 바이킹어(노르만어)등 영국인의 역사만큼 다양한 외래어들이 합쳐져서 만들어진거야.

 

영어에 유독 동의어와 다양한 표현들이 많은 이유도 이렇게 여러민족들의 어휘들이 함께 살아남았기 때문인 거지.

 

영어 공부에 큰 도움은 안되지만 그래도 영어의 역사에 대해알고 공부를 하면 막연함은 좀 가시지 않을까 해서 준비해봤어.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5. 5. 21. 17:13


 

 



삼국지하면 


위 오 촉의 3개국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이런 지도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딱 지도만 보면  3개국 땅이 모두 비등비등하고


오히려 위나라보다 촉이나 오가 더 커보인다.



어린 마음에는


"뭐야.. 조조의 위 보다  유비의 촉이 더 크잖아."


생각하기 쉬운데



현실은




 

 

 



실제로


촉, 오의 땅은  위나라의 1~2주 정도 수준밖에 안된다. (총 13주)




 


 


촉의 땅이 얼마나 험악한지 귀촉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촉은 기반이 산악지역으로 수비하기에는 용이하나 진출하기 불리하다.

 

이 때문에 제갈량이 후반부에 진출하는데만 진땀을 흘린다.


또한 당시 대륙에는 한족만이 사는게 아니라 각기의 다른 민족들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강동에서는 매번 산월족이 반기를 들었다.


촉보다 뻥튀가 심한 것이 오나라다. 오나라의 주 기반인 강동이 발전된 것은 팔왕의 난 이후 북방 이민족의 침략으로 한족이 대규모로


남쪽으로 도망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삼국시대에는 오나라는 그냥 깡촌이다. 산세도 험악하고 특히  산월족과의 마찰로 매번 골치로 썩고 있었다. 




 


 



그나마 제일 제대로 표시된 것이 위나라



조조가 사실상 삼국지의 주인공이다.

 

 

그는 연주 1주로 시작해서


기주, 병주, 유주, 서주, 예주,  양주, 옹주, 사주 (형주 북부)를 차지한다.

 


 

당시에 중원 땅에 거의 모든 영웅들이 몰려있는 것처럼 조조가 차지한 땅들은 모두 알짜배기, 중심이 되는 땅들이다.


(코에이등의 삼국지 게임에 표시된 위나라의 도시 숫자는 *3이 되어야 그나마 현실적이다.)




 

    



익주(+형주 일부분) 한주로 칭제한 유비 /  예주, 양주 일부분으로 칭제한 원술


8주를 차지했지만 황제자리를 사양한 조조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5. 3. 19. 10:25

 

 

 

신채호의 저서인 조선상고사의 말머리에 쓰인 말이라고 잘 알려져있는데,

 

사실은 조선상고사는 커녕 조선사연구초 등에도 없는 내용.

 

덧붙여 신채호가 말로써라도 누군가에게 말했다는 것을 들은 이가 그 누구도 .

 

 

 

 

 

 

 

 

 

"A nation that forgets its past has no future"

 

이는 사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임.

 

처칠은 학창시절 다른 과목은 다 뒤떨어졌어도 역사 만큼은 성적이 좋았다고 하네.

 

 

 

 

 

 

 

 

이 말을 처칠이 했음을 알리는 외국의 팻말과 이미지들.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4. 12. 31. 11:17

 

 

 

혹여  '쇼군 토탈 워' 라는 게임을 해본 사람이 있으면 이런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부연 설명을 하자면

지금 이 장면은 전장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있는 장수가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는 장면인데,

 

일본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나노리(名乗り) 라고 칭해.

 

 

이 '나노리' 에 대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본 무사들은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무엇보다 중요시하잖아?

그런 이유에서 할복이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도 생겨난 것이고.

 

이 '나노리' 도 똑같은 거야.

차이점이라면 할복은 배를 갈라 죽음으로써 명예를 실추시킨 것을 사죄하고 이것을 갚는 것인데 반해,

 

'나노리' 같은 경우에는 자신과 가문의 명예를 내세워

상대를 기선제압하고 사기를 증진시키는 등의 효과를 얻기 위해 벌이는 행위지.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나노리는 어떤 행위인가?

 

 

 

 

 

제목에서 나노리를 전투 예절이라고 했었지?

 

아군과 적군이 전장에서 대치 상태로 서로 마주 보게 되었을 때,

영주나 장수 같은 사람이 전투에 앞서 사진처럼 선두로 나와 자신을 소개해.

 

 

 

 

"나는 어느 가문의 몇대 손이고 전공은 어떠하다.

우리는 이러이러한 명분으로 너희들을 치러 왔으니 패배에 승복하라."

 

 이런 식으로 자신과 가문을 소개하며 그 명예를 내세워 상대를 기선 제압하고

서로의 '격' 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나노리(名乗り) 라고 할 수 있지.

 

 

 

 

재밌는 것은, 고려 시대에 몽골과 고려 연합군이 일본 원정에 나섰을 때.

일본의 지방 호족이라고 할 수 있는 고케닌(御家人) 들도 나노리를 했었어.

 

하지만 여몽연합군이 이러한 일본의 나노리를 이해할 리가 없었고,

여몽연합군은 나노리를 하러 나온 고케닌을 활로 쏘아 낙마시켰다고 해.

 

 

이에 당황한 일본군이 화살로 맞섰으나 당시 여몽연합군의 활은 소의 힘줄, 뿔 등을 이용해 사거리가 매우 길었으나

 

일본군의 활은 단순 나무로 만들어져서 사거리가 비교적 매우 짧았다고 해.

덕분에 일본군의 화살은 명중할 리가 없었겠지.

 

일본군의 활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이유는 활로 적을 죽일 경우 전공을 증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고

습한 기후 때문이기도 해.

 

 

하여간 일본에는 할복 뿐만이 아니라 나노리(名乗り) 라는 특이한 문화가 있었음을 알아봤어. 재밌었기를 바래.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4. 12. 3. 11:26
중국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수많은 왕조가 존재했었어
대단한 황제도 나라를 말아먹은 황제도 많았지
명나라 만력제처럼 30년간 아무것도 안한놈도 있는가하면
청나라 옹정제처럼 하루 3~4시간 자면서 맨날 일만 한 황제도 있어
중국의 역대황제중에 일 열심히한 황제들에 대해 써볼려고해

 


 진나라 시황제 영정


아방궁에서 여자들이랑 떡이나 치고 불로초나 찾았을법한 이미지의 진시황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근면성실했던 황제였어
상소문은 모두다 직접 읽었고 자신이 모두 직접 결재를했어
자신이 처리해야되는 서류를 항상 저울에 달아놓고
1일에 30kg이상 문서처리가 끝나기전까진 잠을 자지 않았어
니들이 저울에 책을 30kg씩 달아서 매일 읽는다고 생각해봐

군현제를 실시했고 전국을 36개군으로 나누고, 지방행정조직을 완성시키고, 화폐, 문자, 도량형을 통일시켰고 전국의 도로를 정비해 교통체계를 발전시켰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할수있는건 
그만큼 진시황이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 생각해
물론 실정도 많았고 분서갱유때문에 이후 유학자들에게
극딜당해 이미지가 병신이 되지만 최근 중국에선
진시황을 재평가하는 학자들이 많은걸로 알고있어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


또라이같은 주원장도 굉장히 열심히 일했던 황제였어
신하들의 상소문을 전부 직접읽었고 일일히 답장을 해줬지
어찌보면 옹정제랑 비슷한 면이 많아
하도 사람을 많이 죽여서 폭군같은 이미지가 더 진하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강희제만큼 검소했고 
8일동안 1660건의 상소를 읽고 3000건의 일을 해결했을만큼
부지런 했던게 주원장이야

재밌는 일화로 형부주사 여태소가 10000자가 넘는 상소를 올렸는데
주원장이 6370자까지 읽다가 모두 빈말이라 빡쳐서
일단 여태소를 잡아 몽둥이로 후드려팬적이 있는데 대단한 인내심으로
16500자까지 전부 상소문을 읽은 뒤에야(쓰는놈이나 읽는놈이나 미친듯)
5개의 건의사항이 나왔고 전부 쓸만한 내용이라
여태소를 때린거에 대해 직접 사과하고
앞으론 상소문을 형식적으로 길게 쓰지말라고 했어

그는 유서에 
"위기에 대한 근심과 걱정으로 하루 게으름 피지않고 열심히 일했다"라고 
남겼어 홍무제는 재상 호유용을 숙청하고 사실상 혼자 모든일을 처리했는데
그만큼 바쁘고 고단하게 일을 하지않았나싶어

 

 



 청나라 강희제 애신각라 현엽



일을 열심히 하기론 강희제도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지
천고일제(천년에 한명 나올까말까한 황제)라는 칭송을 받을만큼
업적도 나열하기 지칠만큼 많아
거기에 공부도 잘하고 사냥도 잘하고 정치도 잘하고 밤일도 잘하고
못하는게 없는 황제였어

특히 8년동안 일어났던 삼번의 난때는
하루의 3, 400통씩 날아오는 전장에서의 보고를 
모두다 보고 분석하고 일일히 지시를 내렸어
거기다 평소 나랏일까지 더해서 했으니 얼마나 일을 많이한건지
상상하기도 힘들어 삼번의 난때 지휘관들이
어물쩡 된거에 복장이 터졌는지 준가르 정벌때는
직접 군을 이끌고 막북으로 친정나가서 가르단을 박살내기도 해

강희제는 무려 제위기간 61년동안 제위에 있었는데
항상 근면하게 일했던 황제에 속해
기본적으로 명군이라도 너무 오랜기간 황제 해먹다보면
건륭제나 당현종처럼 맛이 가버리기 마련인데

강희제는 어찌보면 오래해먹으면서도 잘했으니 더 대단하지않나 싶어

그는 유조에서 
제위기간동안 최선을 다했고 단 한번도 사사로이 쉬지않았다고 말해
아무도 뭐라할수 없는 지존에 자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 역대 최고의 황제가 아닌가 싶어

 

 

 



  청나라 옹정제 애신각라 윤진


옹정제는 강희제의 넷째아들로 태어나
기본적으로 청나라는 저위밀건법(유언장에 후계자지목)으로 항위계승을 했는데
강희제는 유일하게 황태자를 세운 청나라 황제였어
황태자는 둘째 아들 윤잉이였는데 원래대로라면 넷째인 윤진은 
황제가 될 운명이 아니었어 하지만 윤잉이 황태자를 30년넘게하면서
흑화하는 바람에 두번이나 폐위되는 참극을 겪었지

맏아들 윤시 셋째아들 윤지 어덞째 윤사 열넷째 윤제등이
황위다툼을 심하게 하면서 서로 나가 떨어지고
마침내 관심없는듯 점잔빼면서 간보던 넷째 윤진이
저위밀건법에 의해 황제가 돼

엄청나게 유능한 아버지 강희제 밑에서 몇십년간 욕심없는척
야심숨기고 뒷공작했던 옹정제는 정말로 역대 최강의 멘탈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강희제가 기본적으로 관용을 베푸는 정치를 했다면
옹정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각박한 정치를 했어
그리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일하는 성격이었지
아마 옹정제 시절만큼 관리들이 고통받은 시절도 찾기어려울거야
일단 자기와 대립했던 윤사, 윤당, 윤제(심지어 친동생)을 전부 감금하거나 유배보내버리고
자신의 심복이었던 연갱요, 융과다 마저 숙청해버려

숙청과정을 봐도 옹정제의 특유의 숨막히는 성실함과 철저함이 보이는데
연갱요는 무려 91개의 죄목으로 탄핵당해 

이런 옹정제의 철저함과 집요함 성실함을 일하는데서 들어나
하루 3~4시간만 자면서 매일같이 일했으니
신하들이 일 좀 적당히 하고 쉬라고 할정도였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옹정제는 
많은 업적을 남기게 되는데 지정은제의 확립과
중국역사에 수천년동안 자리잡은 부정부패를 일소했다는 평가를 받어
부자들과 탐관오리들은 지옥같은 세상이었지만
옹정제 치하 백성들은 아마 살기좋았을거야

옹정제의 이런 노력으로
청나라 재정은 모두 흑자로 전환됐고
국고는 풍족해졌으며 과세는 공평했고 탐관오리는 감히 착복하지 못했어
강건성세의 황금기는 옹정제가 완수했다고 봐도 무방해
(물론 아들 건륭제가 다 말아먹음)

"천하가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못하고는 나 하나의 책임, 나 하나를 위해 천하를 고생시키지 않으리"


이번엔 중국황제중에 일을 열심히 한 황제들에 대해 써봤어
황제도 저리 열심히 살았는데 게으름 피우는 내자신보면
많이 한심할때가 많아 앞으로는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어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4. 8. 22. 14:40


알랑가 모르겠는데 통일신라는 엄청난 국가였다.

당나라는 중국 왕조 국가중 가장 국력이 강했다고 평가받던 국가였고, 당대의 국제적 문화교류는 신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통일 신라기의 이슬람 상인들 이야기는 헛소리가 아니고 당시에 정말로 이슬람 세계를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신라가 진출해 있었다는걸 뒷받침해준다.


그런 신라의 국격에 걸맞게 경주는 당대의 최고 규모의 도시 중 하나였다.


인구 약 40-50만의 규모로 알려져 있는데, 이와 비슷한 규모는 장안이나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와 같은 거대 제국들의 수도 밖에 없었음.


이 인구 규모는, 삼국유사에 기록된것을 반영한 것이다.


"新羅全盛之時 京中十七萬 八千九百三十六戶"


약 18만 호수가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는데 그럼 약 90만 정도의 인구가 경주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추산할 수 있다.

이 규모는 어느정도 과장됬거나, 경주 주변의 땅에 살고있던 다른 호수를 포함한 숫자라고 하긴 하다만 그걸 감안해도 이 정도 규모의 도시는 당대에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참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구도.

흐르는 강을 따라 배치된 기와집의 구조들이 예술이다.


 

 

 경주 시내 곳곳에는 다리가 있어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 졌다.

강은 교통을 유순하게 해 주는 자연의 산물이었지

 

신라의 왕궁은 지금 터밖에 남지 않았다.

이게 다 몽골 썩을놈들 때문이다.

남은 터와 당대 기록을 기준으로 저런 모습일거다.

그런데 왜 기와집만 있을까? 초가집은 없나? 

 

 황룡사9층목탑 알지?

지금 경주 가보면 터만 남아있잖아

당대 최대규모의 목탑으로 경주의 위상을 떨치게 했지

이것도 몽골썩을놈들때문에 불탔어

 

 그때나 지금이나 경주에는 왕들의 무덤이 많았지

사진 위쪽에 첨성대 보이지?

지금은 첨성대 가보면 첨성대밖에 없지만 그당시에는

여러 과학기술부가 집결한 지금의 카이스트 급이다.

 

 왕궁의 웅장한 자태

지금 복원된 대부분의 문화재는 조선식으로 복원됬다고 하네

 

 불교문화가 발달한 신라

위엄쩌는 황룡사 전경

 

전체적인 경주의 모습 중앙의 왕궁

우측끝 황룡사가 보인다.

 

아 왜 초가집이 없냐고?

그당시 신라 법으로

 

경주는 기와집만 지을수 있게 했다.

 

어느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는지 알 것같지 않아?


 

 

Posted by 쉬어가요
역사2014. 8. 22. 13:59


터키는 우리의 형제의나라니까 6.25때 우릴 도와준걸로 생각하는 애들이 있다.


형제의 나라니까 도와준다? 국제관계에서 그딴게 있을리가 있나




아래의 내용은 대부분은 김진우(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교수님이 군사 87호에 올린 논문의 내용을 보고 썻어



일단 터키가 6.25때 파병 규모를 보면 3개 보병대대, 1개 곡사포 대대, 지원부대 총 5,455명이야


이건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을 한 국가지









1차세계대전에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이 줄 한번 잘못 섰다가 아나톨리아 반도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땅을 뺏겨버려

 

 

 


 

아래는 터키가 잃어 버린 땅과(이미 멸망해 가는 과정이었지만) 세브르 조약의 내용이야

 

 

 

 

  1. 이스탄불과 그 주변 일부를 제외한 동부 트라크야는 그리스에게 할양하고, 아나톨리아 중 이즈미르 지방은 그리스의 행정권 아래 둔다
  2. 마라슈, 우르파 및 안테플 각 주(州)는 프랑스가, 콘야에서 바르크에실을 연결한 선의 남쪽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남서부는 이탈리아가 지배한다.
  3. 아르메니아의 독립을 승인한다.
  4. 보스포루스 해협은 국제 기관 해협 위원회의 관리 아래 둔다.
  5. 오스만 제국군은 5만 700명 이하로 군사력을 축소한다.
  6. 제국의 재정은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가 결정권을 가진다.
  7. 아라비아 반도에서 헤자즈 왕국의 독립을 승인한다.
  8.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영국이,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위임 통치한다.
  9.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 아래 두고, 모로코와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 아래 둔다.

 





이렇게 줄 한번 잘못섰다가 털려버린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2차세계대전때 추축군, 연합군 양측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였지만


터키는 끝까지 중립을 고수하고 중립을  지켜내 

 

 

 


 


문제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였어




2차세계대전후 미국과 더불어 세계초강대국으로 부상한 소련은


1945년 3월 19일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갈 무렵 1925년에 터키와 맺은 불가침 조약을 철회를 선언


거기다가 보스포러스 해협에 군사기지의 설치와 국경지역의 영토를 내놓으라고해


 









소련이 터키에게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하자 미국은 미주리함을 파견하고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하며 터키를 도와주고


영국은 1939년 영국, 프랑스, 터키가  맺은 3자 동맹이 아직도 유효하며 터키가 공격받으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거라 했어



하지만 바로 옆에 소련이 붙어있는 이상 터키는 좀더 안전한걸 원했어


바로 나토



 


 


터키는 나토 창설 당시부터 나토 가입을 희망했어


하지만 지금 우크라이나 처럼 터키가 나토에 가입하면 괜히 소련을 자극해서 위험해 질거라는 생각과 


회원국이 증가하면 자신들에게 제공될 지원이 줄어들거란 걱정때문에


회원국들이 터키의 나토 가입을 거부해


더군다나 나토의 중요 회원국중 하나인 영국은 중동에 별도의 안보기구를 만들고 여기다가 터키를 넣고 싶어 했지


하지만 중동에 만드는 안보기구는 결정적으로 미국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터키는 그딴거 필요없이 나토에 가입하고 싶어했어




나토 창설 직후부터 계속 나토 가입을 위한 외교를 하고 1950년 5월 11일 정식으로 나토에 가입신청을 하였지만 이탈리아를 제외한 모든 회원국들의 반대로 터키의 나토 가입이 결렬되고 말아




터키의 나토 가입을 위해선 뭔가 특별한일이 필요한 거지



그러던 상황에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버려 국제사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온거지


1950년 7월 18일 비밀리에 내각에서 파병을 결정하고 7월 25일에는 의회의 동의도 받지 않은채 여단급 부대를 파병할거라 발표했어


야당측에서는 규모가 너무 많다고, 의회 동의도 생략했다고 뭐라 항의 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파병의 필요성을 부정하진 않았지


국민들도 파병을 원했거든

 


 

총리가 파병을 결정하며 한 연설은 다음과 같아 


'터키의 NATO회원국 지위 확보는 우리가 미국의 행보에 발맞추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에 달려 있었다. 터키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중요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나토 가입때문에 한국전쟁에 파병한다는걸 명백히 보여주지

결국 터키는 1952년 2월 그리스와 함께 그토록 원하던 나토에 가입해




뭐 동기가 어찌 됬든 수리산, 김량장 전투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우리들에게 도움이 됐다는건 명백한 사실이야


지금도 좋은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동기 때문에 터키군인들의 희생을 폄하해서는 안되겠지

정말 외교관계에 공짜는 없는법인것 같아

 

 

 

Posted by 쉬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