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양사람들이 많이하던 '결투'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해.
책 읽거나 영화 보면 한번씩 본적이 있지?
결투란 서로 명예에 상처를 입히거나, 증오의 대상, 영광의 쟁취 등을 목적으로
서양에서 양자간 합의로 이루어지는 대결을 말함
거의 대부분 입회자(second)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해졌음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재했는데
귀족, 문인, 저널리스트 등 당시 사회의 상류층들이 주로 행했다고 함
누군가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싶을땐 정해진 신청 방법이 있었어
곧바로 "야이 개x끼야 싸우자" 가 아니라
"죽여버리고 싶은 상대방의 얼굴을 자신의 장갑으로 툭 한대 치는 것"
장갑에 얼굴을 맞은 새끼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결투에 임하는 경우가 99%가 넘었음
솔직히 너희들 얼굴을 장갑으로 톡 한대 치고, 싸우자고 시비걸면 누구라도 화나지 않겠어?
암튼 근대로 넘어오면서 귀족들이 서로 결투의 초청장이란 걸 쓰게 되는데
이 초청장에 결투 방식, 룰, 입회인 등을 결정했음
대부분 초청장의 내용은
1. 총 or 칼- 뭘로 싸울 것인가
2. 언제까지 싸울 것인가 - 보통 한쪽이 피를 보면 종료. 심한 경우엔 죽을 때 까지
총기가 등장하면서 대부분의 결투는 이 권총 결투로 이루어졌고
그 만큼 어느 한 쪽이 죽거나 불구가되는 확률도 비약적으로 상승함
결투의 성립 조건은 바로 신분
즉, 귀족 - 귀족 / 평민 - 평민 이런 식으로 동일신분에서만 결투가 성사되는 게 일반적임
농노나 노예가 귀족에게 모욕을 줄 경우, 결투를 왜해? 그냥 쏴 죽여버리면 그만인데.
근데 농노랑 평민이 시비가 붙는 경우,
서로 합의가 안 되고 죽여버릴 정도에 이르면 귀족이나 영주가 농노를 일시적으로 평민으로 신분상승 시켜줬음
그제서야 서로 신분이 대등해지고 한 쪽을 죽일 수 있게 되는 거야, 하극상을 방지한거지
여성의 경우도 결투가 벌어진 기록이 있어
여자 vs 여자의 경우 총과 칼이 쓰인 적도 있지만
대부분 죽이지 않을 정도의 무기를 지급했음. 대표적으로 모래를 넣은 스타킹이라던가
만약 여자가 동일 신분의 남자에게 모욕을 당해 결투를 신청할 경우
보통은 여자 측에서 프로 결투 용병을 고용해서 결투신청을 받아들이는게 흔했지만
여자가 꼭 남자를 직접 죽여버리고 싶어할 경우
입회인의 주관으로 남자 쪽에게 패널티를 주게 되어 있음
구덩이를 파 놓고, 남자가 그 안에 들어가 머리랑 팔만 빼 놓고 싸운다던가
남자가 한쪽 눈을 가리고 권총 결투를 한다던가
결투가 벌어지는 시간은 반드시 새벽. 아침이나 오후는 인정되지 않아
새벽녘에 입회자가 결투의 당사자들을 불러 무기를 지급하고 룰을 설명함
결투의 시작 신호는 입회자가 땅에 칼을 꽂거나 / 손수건을 던지는 걸로 시작.
이 신호가 떨어지면 결투는 취소될 수 없어
그리고 서로 등을 돌리고 걸어가다가
입회자가 신호를 보내면 서로 돌아서서 쏴 죽이는 거임
물론 첫발에 승부가 나서 한 쪽이 죽으면 그걸로 종료
아니면 한 쪽이 총상을 입고 쓰러졌을때, 쏜 새끼가 "이 정도면 내 자존심과 명예가 회복됨 ㅇㅋ 그만" 하면
역시 그걸로 종료
하지만 서로 증오가 심할 경우 어느 한쪽이 죽을때까지 싸울 수도 있었지만
당시 귀족들 사이에서 3발 이상 발사할 경우 야만인이라는 불명예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귀족들은 단발로 상대방의 급소(머리나 심장)를 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함
결투를 벌인 유명한 인물들을 적어보자면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사진) vs 단테스
- 사랑 싸움으로 결투 (단테스가 군인이라 푸쉬킨 사망)
미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 vs 프로 결투가 찰스 디킨슨
- 앤드류 잭슨이 유부녀랑 떡쳐서 결투 (앤드류 잭슨 승리 but 총 맞고 적출 실패 평생 몸속에 총알 넣고 살게 됌)
영국 육군 원수 웰링턴 공작 vs 윈첼시 백작
(윈첼시가 정치싸움에서 웰링턴 모욕 - 둘이 합의하에 하늘로 총 쏘고 윈첼시가 사과하면서 끝)
프랑스 출신의 천재 수학가 갈루아
- 스테파니 라는 여자를 둘러싸고 권총 결투로 21세에 요절.(했다는 설과)
- 혁명가 기질이 다분했기에, 자신의 죽음을 도화선으로 동료들의 분노를 일으키게 하기 위해 일부러 결투했다는 설이 있음
등등 엄청 많아
<각 나라별 결투 성향>
독일의 경우, 19세기 대학생들 사이에서 검 결투가 엄청나게 유행했음
오죽하면 한다 하는 대학들 안에선 필수적으로 <결투 클럽>이 있어,
혈기넘치는 대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칼부림을 함
눈과 가슴에는 방어구를 찼지만 얼굴에는 안 참
이유인 즉슨, 결투 중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그건 그 사람에게 최고의 간지나는 칭호였다고 하네
어느 정도냐면 결투 한번 제대로 해서
얼굴에 상처가 크게 생기면, 그 대학 여학생들이 연모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함
그래서 일부러 결투도 안하고 지 얼굴에 흉터자국 내고, 발각당해 개쪽당하고 털리는 경우들도 수두룩했다고...
나치 독일 SS 장교였던 오토 스코르체니 대위가 대학 시절 결투 탑소드로 유명했데
사진에 나온 저 상처가 바로 독일 아가씨들을 전부 홀린 스코르체니의 스카페이스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20세기까지 결투가 활발했던 나라야
간지와 체면이 인생의 핵심이었던 귀족들끼리 조금만 시비가 붙어도 바로 레이피어 뽑고 결투했어
군대에서도 장교 사이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곧바로 결투 ㄱㄱ!!
스페인의 한 여행객이 길거리에서 개나 소나 칼로 찌르는 모습에 경악해서 결투 반대 사회운동을 펼침
근데 오스트리아 황제가
"우리 애들이 간지 지키려고 싸우는 걸 방해하지 마라"
고 사면장을 베풀었던 일화는 유명함
일본의 경우 두말할 것 없이 사무라이들 사이의 진검 승부.
서양과 차이점이 있다면 정통 룰이랑 입회인을 두지 않고
시비가 붙은 두 무사가 서로 칼집에서 칼을 뽑는 순간, 결투가 성립한다고 보았음
에도 시대로 들어와서 성내에서 칼을 뽑으면 할복시키는 법이 생겨났음에도
비밀리에 서로 결투하는 경우가 많았음
이때는 한 쪽이 죽거나 다치면 우연히 부상을 입었다고 서로 입을 맞추고 어물쩡 넘어갔다고 함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무인시대 같은 혼돈의 카오스시대에선 암살과 결투가 비일비재했지만
조선으로 넘어오면서 무력을 배척하고 양반의 명예를 중시하면서 결투가 완전히 사라짐
오늘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현피 라는 이름으로 결투가 부활하는 조짐을 보이기도 함